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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왕도심·제민천 · 🏯

성문을 지나면 백제 왕도가 보이는가

1화 · 공산성 금서루에서 시작하는 웅진의 첫걸음

공산성은 아름다운 성곽 산책로이기 전에, 서울을 잃은 백제가 새 수도를 세우며 선택한 방어와 생존의 자리이다.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겨 온 수도

475년 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수도 한성을 잃고 금강가의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지금의 공산성은 그 웅진도읍기 왕성으로 이해되는 곳이다. 북쪽에는 금강이 흐르고 남쪽에는 산과 구릉이 이어져, 강과 급경사가 성을 지키는 자연 방벽이 되었다. 오늘날 금서루 앞에서 성벽을 올려다보면 먼저 돌성이 눈에 들어오지만, 동쪽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 구간도 남아 있다. 한 시대에 한 번 완성된 성이 아니라 지형을 이용하고 필요에 따라 고쳐 쓴 장소라는 뜻이다. ‘공산성’이라는 현재 이름만 외우기보다 웅진성·고마성·웅천성·쌍수산성으로 달라진 이름을 함께 보면, 이 산성이 백제 이후에도 지역의 중심으로 계속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보인다.

금서루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문인가

금서루는 공산성을 찾는 여행자가 가장 흔히 통과하는 서쪽 문이지만, 지금 보이는 누각을 백제 때의 원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공산성에는 동서남북의 문터와 암문, 방어시설이 남아 있고 현재의 건물과 성벽에는 여러 시대의 수리와 정비가 겹쳐 있다. 따라서 성문을 볼 때에는 ‘몇 년 된 건물인가’만 묻기보다 이 자리가 어떤 방향의 길과 강을 통제했는지 살펴보는 편이 좋다. 문을 통과한 뒤 곧장 전망점만 향하지 말고 성벽의 높낮이와 바깥 경사, 안쪽의 비교적 평탄한 공간을 번갈아 보면 왕성과 산성의 두 기능이 함께 읽힌다. 안내판의 조성 연대와 발굴 결과도 현재 건축물의 연대와 구분해서 확인해야 한다.

성벽에서 왕도심을 내려다보는 법

성곽 위에서는 금강과 금강교, 제민천이 이어지는 공주 원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전망은 단순한 사진 배경이 아니라 옛 왕성이 강의 나루와 육상 교통을 어떻게 살폈는지 짐작하게 하는 지형 자료이다. 반대편 구릉에는 무령왕릉과 왕릉원이 자리한다. 살아 있는 왕의 공간과 죽은 왕족의 공간이 강 남쪽의 구릉과 성에 나뉘어 배치된 셈이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현대 시가지의 경계가 백제 왕도의 정확한 범위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발굴로 확인된 시설과 학계의 추정, 여행자가 전망대에서 얻는 인상을 구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걷기 전에 확인할 것

공산성은 경사가 있고 성벽길의 일부는 비나 눈 뒤에 미끄러울 수 있다. 금서루에서 공북루 또는 쌍수정까지 가는 길은 같은 산성 안에서도 고도와 노면이 달라 편한 신발이 필요하다. 운영시간과 통제 구간, 해설 일정은 계절과 행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공주시 문화관광 공지를 방문 직전에 확인해야 한다. 성벽 가장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통행을 막지 말고, 발굴구역과 출입 제한선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금서루에서 시작해 왕궁 관련 발굴지와 강 전망을 차례로 살피면 공산성을 ‘예쁜 야경 명소’보다 수도를 지켜 낸 복합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