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이 있던 평지에서 행촌동으로 걸으면 짧은 거리 안에 고도가 빠르게 높아진다. 한양도성은 이 지형을 따라 인왕산으로 올랐고, 집들은 성벽 아래 좁은 땅과 골짜기에 들어섰다. 지도를 평면으로만 보면 가까운 두 지점이 실제로는 긴 계단과 급경사로 분리되는 이유다.
성벽은 군사시설이면서 세금과 통행을 가르는 도시 경계였다
성 안은 왕궁과 관청, 시장과 주거지가 있는 행정공간이었고 성문은 사람과 물자의 통로를 관리했다. 성 밖에도 마을과 길, 묘지와 농경지가 있었다. ‘성 안은 도시, 성 밖은 빈 산’이라는 구분은 실제 생활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근현대의 주택은 성곽 가까이까지 올라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전쟁 이후 서울 인구가 늘면서 산기슭의 작은 필지와 가파른 길에도 집이 들어섰다. 수도와 하수, 연료와 건축자재를 올리는 데 더 많은 노동이 필요했다. 전망 좋은 언덕이라는 관광 언어 뒤에는 이동이 불편했던 주민의 일상이 있다.
성곽길은 산책로이기 전에 문화유산과 산길이다
돌 틈에 올라가거나 성벽 위에 앉지 않고, 복원 구간과 원래 석재를 안내에 따라 구분한다. 비·눈·폭염·일몰 뒤에는 계단이 위험할 수 있다. 폐쇄 구간을 우회하며 주민 골목을 단체 지름길로 사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