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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의 폐쇄 · 📍

851년(신라 문성왕 13). 국가는 해상 거점을 없애고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장보고의 몰락은 신라 왕실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됐다. 그는 왕위계승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가 정적들의 표적이 됐고, 846년 자객 염장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 이후 청해진의 위상은 급격히 흔들렸다. 신라 조정은 한때 왕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이 세력을 더는 신뢰하지 않았고, 청해진 주민들 사이에서는 장보고를 제거한 조정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져갔다.

결국 851년(문성왕 13), 신라 조정은 청해진 백성들을 모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인 벽골군(碧骨郡)으로 강제 이주시킨 뒤 청해진을 완전히 혁파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구역 폐지가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해상세력의 기반 자체를 뿌리 뽑는 조치였다. 828년 세워진 왕국이 851년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23년, 그리고 왕국을 세운 사람이 죽은 지는 채 10년도 되지 않은 때였다.

『삼국사기』 문성왕조를 제공하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는 851년 2월 청해진을 혁파하고 그곳 사람들을 벽골군으로 옮겼다는 기사가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장보고 사후에도 자제와 부장 이창진을 중심으로 해외 교역을 이어가려 했으나 중앙정부가 잔여 세력을 정리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청해진은 장보고가 죽은 순간 즉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몇 해 동안 남은 조직이 버틴 뒤 국가의 강제 조치로 해체됐다고 읽어야 한다.

‘주민 모두’나 이주 인원의 정확한 규모는 조심해야 한다. 원사료는 청해진 사람들을 옮겼다는 사건을 전하지만, 오늘날 자주 인용되는 구체적인 인원 수까지 동일한 수준으로 확정해 주지는 않는다. 이 글은 숫자를 보태지 않고 혁파 연도와 이주 목적지만 기록한다. 벽골군은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일대로 비정되지만, 특정 마을 하나를 이주 정착지로 고정하지도 않는다.

여행지 좌표는 사건이 일어난 청해진 유적에 둔다. 김제는 이주 이후의 목적지이므로 완도 현장 카드의 위치로 사용하지 않는다. 장도의 성벽과 접안시설 흔적을 보면서 1편에서는 성장의 조건을, 이 편에서는 국가가 그 기반을 제거한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같은 장소를 두 편이 공유하지만 질문은 ‘어떻게 성장했나’와 ‘왜 해체됐나’로 다르므로 내용 중복이 아니다.

이 사건을 ‘한 사람의 왕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만 쓰면 발굴된 유적과 주민 이주의 강제성이 가려진다. 물리적 흔적은 남았고, 사라진 것은 군진과 교역 조직의 제도적 기능이었다. 이 구분을 지키는 것이 청해진의 흥망을 극적인 비유가 아니라 확인 가능한 역사로 읽는 방법이다.

발굴 유적을 걷는 현재의 방문자는 당시 강제 이주민 개개인의 이름이나 이후 삶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없다. 남아 있는 기록은 국가가 군진을 없애고 집단을 이동시켰다는 큰 사건을 전할 뿐이다. 알 수 없는 개인사를 상상으로 채우지 않고, 권력 재편이 지역 공동체와 해상 네트워크를 함께 해체했다는 구조적 결과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