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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동·창덕궁 · 🏯

창덕궁은 ‘두 번째 궁궐’로 지어졌지만 오랫동안 왕이 실제로 머문 중심 궁궐이었다 — 이궁과 법궁

창덕궁을 ‘경복궁 다음으로 지은 별궁’이라고만 부르면 실제 위상을 놓친다. 조선은 한양 천도 뒤 경복궁을 법궁으로 세웠지만 왕자의 난과 왕권 재편을 거친 태종은 1405년 동쪽에 새 궁궐을 지었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리며 왕실의 생활과 정치가 집중되는 공간으로 성장했다.

이궁은 중요하지 않은 별장이 아니었다

이궁은 법궁을 보완해 왕이 옮겨가 머물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궁궐이다. 왕은 정치 상황, 화재, 상례, 풍수와 생활 편의에 따라 여러 궁궐을 사용했다. 따라서 ‘정궁 하나와 나머지 별궁’이라는 고정된 서열보다 어떤 왕이 어느 시기에 어디에서 오래 살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이 먼저 복구됐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궁궐들이 불탄 뒤 창덕궁은 1610년 먼저 중건됐다. 이후 경복궁이 19세기 후반에 다시 세워질 때까지 여러 왕이 창덕궁에서 즉위하고 정사를 펼쳤다. 조선 후기의 중요한 정치 사건과 왕실 생활을 이해하려면 창덕궁을 ‘보조 궁궐’이 아니라 실질적 중심 무대로 보아야 한다.

오래 사용됐다는 말은 처음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는 뜻이 아니다

창덕궁도 수많은 화재와 보수, 중건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각이 철거되거나 동선과 정원이 바뀌었고, 근대식 내부가 들어간 건물도 있다. 방문자는 건물의 최초 창건연도와 현재 건물의 중건연도를 구분해 읽어야 한다. ‘600년 된 건물’이라는 한 문장으로 모든 부재의 나이를 같게 만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