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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동·창덕궁 · 🏠

낙선재에는 조선 왕실의 사적 취향과 왕조가 끝난 뒤의 삶이 함께 남아 있다 — 헌종에서 대한제국 황실까지

창덕궁 낙선재는 화려한 궁궐 단청과 다른 짙은 목재색, 정교한 창살과 문양으로 눈에 띈다. 헌종은 1847년 낙선재를 지었고 주변 건물과 후원에 자신의 취향을 담았다. 그러나 ‘왕이 사랑한 여인을 위해 지은 로맨틱한 집’이라는 설명만으로 소비하면 정치적 혼인, 후계 문제, 여성들의 실제 생활을 가린다.

절제된 외관에도 왕실의 기술과 상징이 들어 있다

단청을 하지 않았다고 평범한 민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창호의 무늬, 난간과 석물, 후원으로 이어지는 화계에는 숙련된 장인의 작업과 왕실 상징이 집중돼 있다. 소박함 자체도 왕실이 선택하고 연출한 미감이었다.

낙선재 권역은 여러 왕실 여성이 살았던 공간이다

석복헌과 수강재를 포함한 권역에는 경빈 김씨, 순원왕후 등 서로 다른 왕실 구성원의 생활이 연결됐다. 건물 한 채마다 기능과 사용자가 달랐고 시기에 따라 바뀌었다. 낙선재를 남성 군주의 취향만으로 설명하지 말고 이곳에서 살림을 꾸린 여성과 궁인의 시간을 함께 본다.

왕조가 끝난 뒤에도 왕실 가족의 삶은 계속됐다

일본에서 돌아온 덕혜옹주와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는 말년에 낙선재 권역에서 생활했다. 식민지 지배와 정략결혼, 귀국 허가와 국적 문제를 겪은 개인의 삶이 조선 궁궐 안에서 이어진 셈이다. 근대 왕실의 흔적을 ‘마지막 공주 이야기’로 감상화하지 않고 제국과 분단이 남긴 조건을 함께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