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연산군은 재위 후기의 폭정으로 1506년 중종반정에 의해 축출돼 폐주가 됐다. 사실 왕에서 대군 신분으로 강등되며, 그의 무덤은 왕릉이 아닌 ‘묘’의 격식만 갖추게 됐다. 사실 현재의 방학동 묘는 1512년 이장돼 온 것으로, 폐위된 왕후 거창군부인 신씨가 중종에게 이장을 간청한 결과였다. 사실 이 묘는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사실
묘역 상단에는 연산군과 거창군부인의 쌍분이, 그 아래에는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의 묘, 또 그 아래에는 연산군의 사위와 딸의 묘가 자리한다. 사실
현장에서 볼 것
- 능과 묘의 규모·형식 차이
- 쌍분으로 조성된 연산군과 거창군부인의 묘
- 묘역 내 세대별 배치 구조
정확한 표현
“연산군릉”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왕에서 대군으로 격하됐기에 정식 명칭은 ‘연산군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