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부여 구간에 붙은 이름
부여군 백마강길 안내는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 앞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약 16킬로미터의 금강 구간을 백마강이라 설명한다. 백마강이라는 이름에는 백제 멸망과 관련한 여러 전설이 따라붙지만, 강 자체를 백제만의 물길로 한정할 수는 없다. 금강은 사비 천도 이전과 백제 멸망 이후에도 계속 흘렀고 농업, 나루, 상업과 생활용수의 기반이 되었다. 지도에서 행정 경계보다 물의 흐름을 먼저 보면 부여읍과 규암면이 서로 마주 보는 별도 관광지가 아니라 같은 강을 이용한 생활권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구드래는 성 아래의 출입구였다
부소산성 서쪽의 구드래 일대는 강변 공원과 선착장으로 알려져 있다. ‘구드래’ 이름의 정확한 유래에는 여러 설명이 있으므로 하나를 확정 어원처럼 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산성 아래 완만한 강변이 배가 닿고 사람이 오가기 좋은 지점이었다는 공간 관계이다. 관북리의 왕궁 관련 유적에서 구드래까지 걸으면 높은 성벽과 낮은 나루가 서로 다른 기능을 맡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잔디공원과 포장도로, 선착장 시설은 현대에 정비된 것이며 백제 시대 항구의 원형이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다.
방어선과 교통로는 모순이 아니다
큰 강은 적의 접근을 늦추지만 배를 가진 사람에게는 빠른 이동로가 된다. 부소산에서 강 굽이를 내려다보면 감시와 통제에 유리한 지형이 보이고, 강변에서는 물길이 규암·공주·하류 지역으로 열려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 사비도성은 강을 등진 성이 아니라 강의 이점을 이용하면서 위험도 관리해야 한 수도였다. 백마강을 낭만적인 유람선 풍경이나 멸망의 비극으로만 설명하면 농산물, 건축 재료, 사람과 정보가 오간 일상의 수운이 가려진다. 다만 고대의 정확한 항로와 선박 규모는 고고학 자료가 확인하는 범위 안에서만 말해야 한다.
배를 타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유람선은 낙화암과 고란사, 구드래 주변의 지형을 강 쪽에서 이해하게 돕는다. 그러나 관광선의 선착장과 운항 코스가 고대 나루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뜻은 아니다. 운항 여부는 수위, 안개, 강풍, 정비와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탑승 전 공식 안내와 현장 매표 정보를 확인하고 구명장비와 승무원 지시를 따른다. 배를 타지 않아도 구드래 둑길에서 부소산 절벽, 백제교, 규암 쪽 수북정 방향을 차례로 보면 강이 경계인 동시에 연결로였다는 핵심을 읽을 수 있다.
강변의 낮은 시선과 부소산의 높은 시선을 비교하면 같은 물길이 운송로와 방어선으로 동시에 작동한 이유가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현재의 다리와 제방도 강을 이용하는 방식이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생활사의 일부로 함께 기록할 만하다.
두 높이를 모두 경험하면 강을 한 가지 기능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