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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 · 🏛️

왕흥사지와 오늘의 규암은 어떤 시간으로 이어질까

10화 · 왕실 사찰의 강변에서 현재의 생활문화권까지

규암면의 왕흥사지와 천정대는 사비 왕실이 강 건너 공간을 이용한 흔적을 보여주고, 오늘의 마을과 문화공간은 그 땅이 계속 새 기능을 얻어 왔음을 말한다.

강 건너에 세운 왕실 사찰

왕흥사지는 백마강 북쪽 규암면에 자리한 백제 사찰터이다. 출토된 사리기의 명문은 절의 창건과 왕실 관련 역사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드문 자료이다. 유적에서는 건물터와 중심축, 강과의 위치 관계를 보아야 한다. 화려한 복원 건물이 없더라도 사리장엄구가 나온 장소와 부소산성 건너편이라는 입지가 왕실 사찰의 성격을 설명한다. 왕이 강을 건너 예불하러 왔다는 전승은 자온대·천정대 이야기와 연결되지만 모든 이동 경로와 의례 절차가 문헌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천정대에서 선택의 전설을 만나다

천정대에는 백제의 재상 선발이나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늘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름과 전승은 사비 정치문화를 상상하게 하지만, 현재 남은 지형만으로 구체적인 의식의 모습과 참가자를 재현할 수는 없다. 백마강길을 따라 접근할 때는 안내문이 역사 기록, 설화와 연구자의 추정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살핀다. 전망이 좋다는 이유로 위험한 바위 가장자리로 나가지 않고, 산길 상태와 통제 여부를 확인한다. 멀리 보이는 부소산과 강의 방향은 강 양쪽이 왕도의 의례와 통치 공간으로 연결되었음을 이해하는 단서이다.

유적 주변에도 현재의 삶이 있다

규암면은 왕흥사지와 백제문화단지만 있는 관광 구역이 아니다. 들에서는 쌀과 수박, 버섯과 멜론 같은 농업이 이어지고 학교, 상점, 주택과 작업장이 생활권을 이룬다. 오래된 건물이나 창고를 활용한 문화공간이 생겼다고 해서 마을 전체가 하나의 ‘힙한 거리’로 바뀐 것은 아니다. 특정 공간의 영업과 전시는 변할 수 있고 주민의 사유 공간도 존중해야 한다. 고대 유적, 농업 생산지와 현대 문화공간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직선적인 역사 계승이나 성공한 재생 서사로 과장하지 않는다.

사라진 수도를 현재형으로 읽기

부여읍 중심 유적만 보고 돌아가면 백마강 건너편은 배경으로 남는다. 왕흥사지, 천정대, 수북정과 규암 마을을 연결하면 사비도성이 강 양쪽의 나루와 길을 이용했다는 공간감이 살아난다. 버스 배차와 보행 구간은 도심보다 불편할 수 있어 당일 교통 정보를 확인하고, 여러 지점을 한꺼번에 무리하게 걷지 않는다. 유적 보호구역과 농로, 주민 생활길을 구분한다. 이 권역의 결론은 현대 규암이 백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주장이 아니다. 같은 강변이 왕실 사찰, 나루, 농업과 생활문화의 장소로 거듭 사용되며 서로 다른 시간의 흔적을 한 동네 안에 남겼다는 사실이다.

왕흥사지의 빈터에서 현재 마을로 이동할 때 보이는 농로와 창고도 그 사이의 시간을 잇는 실제 풍경이다. 유적과 새 문화공간만 점처럼 소비하지 않고 주민이 오가는 길을 존중해 걸을 때 규암의 생활감이 비로소 여행 이야기 안에 들어온다.

이 시선이 고대와 현재를 억지로 한 줄로 잇지 않으면서도 한 권역으로 묶어 주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