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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 · 🌉

백제교가 놓이기 전 규암 사람들은 어떻게 강을 건넜을까

9화 · 규암나루와 수북정에 남은 강 건너 동네의 기억

규암리의 나루 기억과 자온대 위 수북정은 백마강이 읍과 면을 갈라놓으면서도 매일의 이동으로 이어 준 경계였음을 보여준다.

다리보다 먼저 있었던 나루

규암면의 공식 마을유래는 백제교가 놓이기 전 규암나루가 유명했다고 전한다. 부여읍 구드래 쪽과 규암리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고, 배는 사람과 생활물자를 건네는 교통수단이었다. 오늘은 교량과 자동차 도로가 이동의 기준이어서 나루의 필요를 체감하기 어렵다. 수북정 아래에서 강폭과 맞은편 부소산 방향을 보면 바람과 수위,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도강이 생활의 중요한 조건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선착장이나 강변 시설을 옛 나루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로 곧바로 동일시하지 않는다.

자온대 위에 세운 수북정

수북정은 조선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이 지은 정자로, 그의 호에서 이름을 얻었다. 앞면 세 칸, 옆면 두 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백마강을 내려다보는 자온대 위에 자리한다. 백제 유적이 많은 부여에서 조선시대 정자를 만나는 일은 이 강변이 백제 멸망 뒤 비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정자에서 보는 부소산과 강의 경치는 자연 그대로의 전망만이 아니라 나루, 농경지, 마을과 교량이 오랜 시간 덧붙은 생활 경관이다.

따뜻한 바위 전승을 읽는 법

자온대에는 백제왕이 왕흥사에 예불하러 갈 때 머물렀고 임금이 오면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부여군 백마강길 안내는 신하들이 먼저 불을 지펴 바위를 데웠을 가능성도 함께 제시한다. 이 이야기는 왕의 이동과 충성을 설명하는 지역 전승으로 흥미롭지만, 바위가 실제로 저절로 따뜻해졌다는 자연 현상이나 확정된 의례 절차로 쓰면 안 된다. 암벽 글씨와 정자, 왕흥사지 방향을 함께 보며 후대 사람들이 백제왕의 길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질문하는 편이 적절하다.

강 건너 두 동네를 한 번에 걷기

부여읍에서 백제교를 건너 규암리로 이동하면 자동차 중심 도로의 소음과 보행 안전을 먼저 살펴야 한다. 다리 위 휴게공간이나 보행로의 현재 개방 상태도 현장에서 확인한다. 수북정은 문화유산이자 마을 가까운 정자이므로 큰 소리로 점유하거나 건물에 기대고 낙서하지 않는다. 강변 수위가 높거나 길이 젖은 날에는 가장자리 접근을 피한다. 구드래에서 수북정을 마주 보고, 다시 규암에서 부소산을 바라보는 두 시선을 연결하면 백마강권이 한쪽 강변의 관광지가 아니라 나루와 다리로 이어진 양안의 동네라는 점이 선명해진다.

다리가 생긴 뒤 나루의 일상 기능은 약해졌지만 강을 건너 장과 학교, 일터로 향했던 이동의 기억은 마을 이야기 안에 남아 있다. 정자의 건축과 백제 전승만 보지 않고 오늘의 교통까지 함께 살피면 같은 강변에 쌓인 시간이 넓어진다.

왕래의 주인공은 이름난 인물뿐 아니라 매일 배를 기다렸던 주민들이었다. 그 생활의 속도를 상상해야 나루가 다시 보인다.

나루의 기억은 그래서 지금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