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의 옛 이름은 ‘붓골’과 연결해 설명되며, 남산 북쪽의 넓은 남촌 생활권에 속했다. 이곳을 양반 선비만 살던 동네로 생각하면 실제 구성을 놓친다. 하급 관리와 군인, 상인, 기술자, 관직 진출에 실패한 선비 등이 경사진 골목과 남산 자락에 섞여 살았다.
딸깍거리는 나막신이 별명이 됐다
‘남산골 딸깍발이’는 비가 오지 않아도 나막신을 신고 다니던 가난한 선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전해진다. 나막신의 딸깍 소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지식인으로서 체면을 지키려는 모습을 상징했다. 이희승의 수필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한 시대 모든 주민의 실제 모습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글과 교육이 생계 수단이 되기도 했다
관직과 재산이 없는 선비는 편지를 대신 써주거나 서당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살아갔을 수 있다. 학문은 신분적 자부심인 동시에 노동이었다. 남산골의 선비 이미지는 낭만적인 청빈만이 아니라 체면과 생계가 충돌한 도시생활의 한 장면이다.
오늘의 필동에서도 여러 기능이 겹친다
대학과 인쇄업체, 음식점, 주택, 문화공간이 가까이 놓여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의 정돈된 풍경만 보고 동네 전체를 전통마을로 오해하지 않는다. 큰길에서 한 걸음 벗어난 생활 골목은 주민과 작업자의 공간이므로 조용히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