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대학로를 젊음과 공연의 거리로만 소개하면 옛 캠퍼스가 맡았던 정치적 역할을 놓친다. 학생들은 강의실과 잔디밭, 다방에서 토론했고 종로의 도심 공간으로 행진하기 쉬웠다. 학교와 국회·언론사·관청이 가까운 위치는 대학생의 목소리를 도시 전체로 확장했다.
1960년 봄 학생들은 거리로 나왔다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퍼지고 4월 19일 서울의 대학생과 시민이 대규모로 참여했다. 서울대 학생들도 동숭동에서 도심으로 향했다. 현재 공원의 평온한 풍경은 그 이동과 충돌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므로 기념물과 기록을 함께 읽어야 한다.
1960~1970년대 캠퍼스는 반복해서 통제됐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과 1970년대 유신체제 반대운동 속에서 대학로는 시위와 휴교, 경찰 통제의 무대가 됐다. ‘학생의 거리’는 자유로운 토론 공간이면서 국가 권력과 충돌하는 공간이었다.
민주화의 기억을 특정 세대의 전설로만 만들지 않는다
학생운동에는 시대별 쟁점과 내부 차이가 있었고 모든 학생이 같은 방식으로 참여한 것도 아니다. 영웅 서사만 반복하기보다 누가 발언할 수 있었고 여성 학생과 주변 노동자·시민은 어떻게 연결됐는지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