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 곁에서 성벽을 찾으면 도로 때문에 흐름이 끊겨 보인다. 자동차와 전차가 다니고 도시가 확장되는 동안 평지 성곽의 많은 부분이 철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산 방향으로 오르면 복원된 구간과 옛 돌이 섞인 성벽이 다시 마을의 경계처럼 나타난다.
돌의 크기와 모양은 한 시대가 아니다
한양도성은 1396년 처음 쌓은 뒤 세종과 숙종 시기 등 여러 차례 고쳐졌다. 작은 자연석을 다듬어 쌓은 부분, 비교적 네모난 돌을 정교하게 맞춘 부분이 한 성벽 안에 공존한다. 모든 돌을 창건 당시 원형으로 생각하지 말고 수축과 보수의 층으로 읽는다.
각자성석은 공사의 책임을 돌에 남겼다
일부 성돌에는 공사 구간과 담당 지역, 인명 등을 새긴 글자가 보인다. 거대한 국가 시설이 이름 없는 노동만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구간별 동원과 책임 체계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글자를 찾겠다고 성벽에 기대거나 돌 틈을 만지지 않는다.
성곽길은 주민의 집 앞길이기도 하다
낙산 구간은 전망이 좋지만 창신동과 이화동의 생활 골목을 지난다. 야간 조명과 사진 명소가 주민의 휴식권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큰 목소리와 주택 창문 촬영을 피하고 공식 순성길만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