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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 🏢

세운상가는 1968년의 미래가 남긴 긴 실험이다

4화 · 주거와 상업, 보행을 한 건물에 겹친 입체도시

세운상가는 낡은 전자상가이기 전에 서울이 도로 위와 건물 위를 연결해 새로운 도시를 만들려 했던 거대한 실험이다. 성공과 실패를 한쪽으로만 판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건물 안에 함께 남아 있다.

비워진 땅은 누구에게나 빈 땅이 아니었다

세운상가가 놓인 종로와 퇴계로 사이의 긴 축은 일제강점기 말 공습 때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을 비운 소개공지에서 출발했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 땅에는 피란민과 도시 빈민의 무허가 주거가 형성되었다. 1960년대 서울시는 판자촌을 철거하고 현대적 도심을 세우려 했다. 서울기록원에 남은 1966년 ‘대한극장 앞 청계천4가 간 계획도로 정비방안’은 그 개발 구상이 행정 사업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운상가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세워진 미래가 아니라, 기존 거주를 지우고 세운 미래이기도 하다.

건물 하나가 아니라 약 1킬로미터의 도시였다

건축가 김수근이 구상한 세운상가군은 상점과 사무실, 아파트를 수직으로 쌓고 3층 높이 보행 공간으로 여러 동을 잇는 입체도시였다. 서울기록원은 이를 1968년에 만들어진 약 1킬로미터 길이의 국내 최초 주상복합 상가군으로 설명한다. 당시 아파트와 엘리베이터, 옥상 공간은 새로운 생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건설사가 구간별로 달랐고 계획 전체가 동일하게 실현되지는 못했다. 현장에서 건물의 높이와 연결부가 달라지는 지점을 보면, 하나의 거대한 설계가 토지와 사업 조건에 따라 분절된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전자상가는 완제품보다 수리와 부품의 기억을 남겼다

1970~80년대 세운상가는 라디오, 음향기기, 텔레비전과 전자부품의 중심지였다. 용산전자상가가 생기고 유통 방식이 바뀌면서 완제품 판매 중심 기능은 약해졌지만, 부품을 찾고 기기를 수리하며 시제품을 만드는 기술은 주변 골목과 함께 이어졌다. ‘탱크도 만든다’는 유명한 표현은 무엇이든 실제로 제작했다는 기록이라기보다 기술과 부품이 밀집한 장소에 대한 도시적 과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행자는 전설을 사실처럼 반복하기보다 어떤 부품과 수리 업종이 실제로 남아 있는지 살핀다.

재생과 철거 계획은 방문 당일의 현장을 바꾼다

세운상가군은 철거와 존치, 도시재생과 녹지축 조성 계획이 여러 차례 바뀐 장소이다. 과거에 공개됐던 보행교나 옥상, 전시 공간이 현재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공개 계단과 안내 표지, 안전 통제를 우선하고 막힌 구간을 넘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종묘 방향을 볼 때는 높은 건물과 역사 경관을 둘러싼 논쟁도 함께 떠올린다. 이곳의 가치는 ‘보존해야 할 명작’이나 ‘철거해야 할 낡은 건물’ 중 하나로 고르는 데 있지 않다. 서울이 미래를 만들 때 누구를 옮겼고, 무엇을 연결했으며, 어떤 기능을 끝내 유지하지 못했는지 한 장소에서 확인하는 데 있다.

건물 연도도 자료마다 세운상가 개관 시점과 상가군 전체 완성 시점을 달리 적는다. 한 해만 외우기보다 1967년 개관 행사와 1968년 상가군 형성이라는 시간차를 함께 이해한다. 현장의 여러 동이 서로 다른 이름과 준공 과정을 가졌음을 알면 ‘세운상가’가 단일 건물 이름처럼 사용되는 이유와 그 한계도 보인다.

건물 내부에서는 주거 구역과 영업 구역, 공개 보행 공간을 구분한다. 방문객에게 전망이 좋아 보이는 복도라도 주민과 상인의 사적 동선일 수 있다. 안내 표지가 없는 문과 계단을 탐색하지 않는 태도가 거대한 건축을 오래 관찰할 수 있게 하는 기본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