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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마천·개롱역 · 🪨

거여동은 하나의 옛 마을에서 생기지 않았다

1화 · 거암리에서 잔버드리와 개롱리를 품은 동네 이름

거여동은 ‘거대한 나머지’라는 한자 풀이로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사람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거암리와 여러 자연마을이 합쳐지며 지금의 지명이 만들어졌다는 전승을 따라가면 서울 동남쪽 주거지의 오래된 층이 보인다.

거여라는 두 글자 앞의 거암리

송파구 공식 동명 자료는 거여동에 거암이라는 사람이 살아 거암리라 불렀고, 발음이 변해 ‘김리’ 또는 ‘겜리’로 불렸다고 전한다. 이 설명은 문헌으로 완전히 확정된 어원이 아니라 지역에 전해 온 지명 이야기이다. 따라서 거암을 실존 인물로 단정하거나 특정 시대의 사건을 덧붙이면 안 된다.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인물의 집터가 아니라 이름이 변한 흔적이다. 지하철 5호선 거여역과 거여동 표지, 골목의 오래된 상호를 함께 보면 행정동 이름이 먼저 생기고 마을이 뒤따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부르던 소리가 행정 지명으로 굳어진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외국인 여행자는 ‘거여’를 한자의 직역보다 고유 지명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여러 마을이 한 이름 안으로 들어왔다

거암리만으로 오늘의 거여동이 된 것은 아니다. 송파구는 잔버드리, 개롱리, 뒷말을 병합해 거여리라 했다고 설명한다. 잔버드리는 버드나무가 많은 낮은 땅을 떠올리게 하고, 뒷말은 중심 마을 뒤쪽에 있던 자연부락이라는 관계를 담는다. 개롱리는 현재 개롱역과 장군거리 이름으로 이어지는 별도의 이야기를 남겼다. 행정구역 통합은 지도 위 선을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옛 이름은 공원·도로·역·상권에 흩어져 살아남았다. 한 편의 전설로 거여동 전체를 설명하기보다 어떤 이름이 어느 위치에 남았는지 비교해야 하는 이유이다. 1963년 1월 1일 서울에 편입되며 거여동이 됐다는 행정 연혁도 농촌 마을이 수도의 동으로 바뀐 경계를 보여준다.

새 아파트만 보면 놓치는 도시의 교체

거여·마천 일대는 재정비촉진사업과 주택 정비가 오랫동안 이어진 곳이다. 새 공동주택과 넓어진 도로, 공원 옆에는 사업 구역 밖의 저층주택과 오래된 생활상권이 함께 남아 있다. 계획 발표, 정비구역 지정, 착공, 입주는 서로 다른 단계이므로 지도에 표시된 개발 계획을 완공된 시설처럼 말하면 안 된다. 공사구간과 보행로도 수시로 달라질 수 있다. 여행자는 거여역에서 출발해 큰 도로와 이면 골목의 높이·폭·건물 연식을 비교하되, 주거지를 전망대처럼 소비하지 않는다. 주민의 출입구와 차량 동선을 막지 않고, 공사 울타리 안이나 공동주택 사유지에 촬영을 위해 들어가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이름의 조각을 따라 걷는 방법

거여동을 보는 짧은 방법은 유명 명소를 억지로 만드는 대신 지명의 조각을 확인하는 것이다. 거여역에서 현재 거여동의 생활가로를 보고, 동쪽으로 이동할 때 마천동의 성내천 계획과 산자락이 어떻게 가까워지는지 살핀다. 반대로 서쪽 개롱역 방향에서는 옛 개롱리 이름이 가락2동의 역명과 상권에 남은 모습을 비교할 수 있다. 세 장소는 도보로 모두 묶어야만 의미가 생기는 코스가 아니다. 날씨와 공사상황, 체력에 따라 한 구간만 보아도 된다. 오래된 지명은 정확한 경계 지도라기보다 사람들이 장소를 기억한 언어이다. 거여동에서는 그 언어가 통합과 서울 편입, 재개발을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읽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