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의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가면 텔레비전 탑이 시야를 붙든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건물 안에 놓인 조각을 넘어 관람 동선을 조직하는 건축적 중심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설치됐고, 1,003이라는 수는 개천절 10월 3일과 연결해 설명된다.
최신 기술은 가장 빨리 낡는다
작품은 브라운관 모니터 1,003대와 철 구조, 영상·음향으로 구성된다. 제작 당시에는 전자매체의 미래를 상징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같은 규격의 모니터와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화면의 고장과 열, 안전 문제는 작품을 계속 가동할수록 커졌다. 미디어아트는 전통 회화와 다른 방식으로 ‘원본’을 묻게 한다.
꺼짐도 작품 역사의 일부다
다다익선은 장기간 가동 중단과 약 3년의 보존·복원 작업을 거쳐 2022년 다시 공개됐다. 모든 부품을 무조건 새것으로 바꾸면 외형은 유지돼도 1988년 기술의 물질성이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낡은 부품만 고집하면 영상이 나오지 않는다. 보존가는 작가의 의도, 안전, 부품의 진정성과 관람 가능성을 함께 판단한다.
과천관은 작품을 멀리 보게 만든다
1986년 개관한 과천관은 서울 도심의 미술관과 달리 산과 호수, 대공원 시설 안에 놓여 있다. 전시를 보려면 대공원역에서 셔틀·도보 등 이동을 계획해야 한다. 이 거리감은 국가 미술관을 자연 속 문화단지로 만들려던 1980년대 계획을 보여 주지만 접근 부담도 만든다.
방문 당일 작품 가동시간과 전시·셔틀·휴관 정보를 미술관 공식 안내에서 확인한다. 화면을 촬영할 때 다른 관람객과 경사로 통행을 막지 않고 작품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재사용하지 않는다. 다다익선을 보는 가장 좋은 질문은 텔레비전이 몇 대인가가 아니라, 기술을 재료로 한 작품이 기술의 죽음 이후에도 어떻게 같은 작품으로 남을 수 있는가이다.
CRT는 두껍고 무거운 옛 브라운관 텔레비전이다. 평면 화면에 익숙한 젊은 여행자에게 이 물질적 차이를 먼저 설명하면 보존 논쟁이 쉬워진다. 영상 파일만 복사한다고 작품 전체가 남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곡률, 색, 열과 깜빡임까지 경험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켜져 있지 않은 시간에도 실패한 관람은 아니다. 보존 기록과 구조를 살피면 전자제품의 수명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미술관의 책임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