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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 🌳

옥사와 회화나무 앞에서 멈추는 여행

5화 · 박해의 고통을 관광 장면으로 소비하지 않고 기억하는 법

잔디가 넓은 해미읍성 안에서 옥사와 회화나무 주변은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이곳에서는 사진보다 기록의 범위와 희생자의 존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행정과 군사의 성이 처벌의 장소가 되다

해미읍성은 조선 후기 내포 지역의 치안과 재판을 맡은 곳이었고, 천주교 박해기에는 붙잡힌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왔다. 당시 천주교는 국가 질서에 도전하는 사학으로 규정됐고 신자들은 국사범처럼 다뤄졌다. 사람들은 옥사에 갇혀 문초를 받거나 처형지로 보내졌다. 성의 군사·행정 기능과 박해의 역사는 별개의 관광 주제가 아니라 같은 권력이 작동한 결과이다. 관아에서 결정된 명령이 옥사와 처형으로 이어졌다는 공간 관계를 생각하면, 아름답게 정비된 읍성이 동시에 폭력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피하지 않게 된다.

지금의 옥사는 기록과 발굴을 바탕으로 재현됐다

현재 보이는 옥사는 옛 건물이 그대로 남은 것이 아니다. 국가유산 안내판은 터만 남았던 곳을 발굴한 뒤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내옥과 외옥을 복원·재현했다고 설명한다. 남녀 공간을 나누어 구성한 건물은 당시 수감 구조를 이해하게 하지만, 모든 감방과 사건을 완벽히 재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복원된 벽과 형구를 자극적인 체험 장치로 대하기보다 어떤 자료를 근거로 현재 모습이 만들어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기록에 남지 않은 수감자의 이름과 삶이 더 많았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회화나무의 상처를 단정적인 이야기로 과장하지 않다

옥사 앞 회화나무는 박해 과정에서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했다는 전승과 함께 기억된다. 나무에는 철사 흔적으로 소개되는 자국이 남아 있다. 오랜 생명체의 상처 앞에서 방문객은 손으로 만지거나 끈을 걸고, 고문 자세를 흉내 내는 촬영을 해서는 안 된다. 전승의 세부를 확인되지 않은 개인 이름이나 정확한 횟수로 부풀리는 일도 피한다. 국가유산과 서산시 안내가 확인하는 범위 안에서 박해 관련 유적으로 이해하고, 희생자의 고통을 볼거리로 재연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침묵과 이동의 여백을 남기다

옥사와 회화나무 주변에는 순례자와 유가족의 기억을 이어가는 방문객도 온다. 큰 소리로 설명하거나 통로를 막고 단체 사진을 찍기보다 잠시 머물 자리를 나눈다. 어린이에게는 형벌의 세부를 과장하기보다 당시 국가가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처벌했는지 연령에 맞게 설명한다. 이후 성 밖 해미국제성지로 이동하면 수감과 문초의 장소에서 처형과 추모의 장소로 이어지는 지리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고통을 짧은 체험 코스로 소비하지 않고, 두 장소 사이에 남은 생활 골목과 해미천도 존중하며 걷는다.

공식 기록이 확인하는 수감과 문초의 구조를 설명하되, 남지 않은 대화와 감정을 대신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름과 생애가 사라진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빈칸을 마음대로 채워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까지 아는지 경계를 표시하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는 일이 희생자를 다시 이야기 재료로 이용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