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 밖 해미천변이 집단 처형의 장소가 되다
해미읍성 옥사에 갇힌 신자 가운데 많은 사람이 성 밖으로 끌려나와 처형됐다. 서산 문화관광은 1866년 이후 박해기에 해미천 주변에서 많은 신자가 희생됐고 일부는 큰 구덩이에 생매장됐다고 설명한다. 자료마다 희생자 수와 기간의 표현이 달라 정확한 숫자를 하나로 단정하기보다,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가 많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의 잔디와 물길이 평온하다고 해서 과거의 사건도 추상적인 전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읍성에서 성지까지의 짧은 거리는 행정의 결정이 실제 죽음으로 이어진 물리적 거리였다.
‘예수 마리아’가 여숫골로 들렸다는 지명 전승
여숫골이라는 이름은 죽음을 앞둔 신자들이 부른 ‘예수 마리아’가 주민에게 ‘여수머리’처럼 들렸고, 그것이 지명으로 굳었다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이 설명은 지역에서 전해온 기억의 방식이다. 언어학적으로 확정된 유일한 지명 기원처럼 단언하기보다, 당시 주민이 낯선 종교의 기도 소리를 어떻게 듣고 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승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기록에서 이름을 잃은 사람들의 마지막 목소리가 장소 이름에 남았다는 해석은 강렬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로 꾸며 죽음의 폭력을 가려서는 안 된다.
순교탑과 진둠벙을 서로 다른 기억 장치로 보다
성지에는 무명 순교자를 기리는 순교탑과 처형의 기억을 전하는 진둠벙 등이 있다. ‘둠벙’은 웅덩이를 가리키는 지역말이며, 진둠벙은 죄인을 뜻하는 말과 결합한 이름으로 전해진다. 순교탑은 사건 당시부터 서 있던 물건이 아니라 후대 공동체가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반면 물길과 지형은 사건의 현장성을 떠올리게 한다. 둘을 구분하면 박해 당시의 흔적과 이후 사람들이 만든 추모 방식이 어떻게 한 성지 안에 겹치는지 알 수 있다.
종교가 달라도 추모 공간의 규칙을 지키다
해미국제성지는 천주교 순례지이면서 일반 여행자에게 열린 역사공간이다. 신자가 아니라도 방문할 수 있지만 미사와 기도, 순례가 진행될 때는 소음을 줄이고 지정된 동선을 따른다. 묘역과 기념물에 기대거나 상업 촬영의 배경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시설 개방과 전례 시간은 달라질 수 있어 공식 안내를 확인한다. 성지를 나온 뒤에는 해미천과 주변 마을이 주민의 생활공간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여숫골을 제대로 방문한다는 것은 비극을 빠르게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이름이 남지 않은 사람을 위해 잠시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모든 희생을 한 시기와 한 방식으로 묶지 않는 주의도 필요하다. 자료가 확인하는 범위까지만 말하고, 알 수 없는 개인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으로 완성하지 않는다. 무명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삶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후대 기록에서 이름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차이를 지킬 때 순교탑과 지명은 익명의 비극을 소비하는 장치가 아니라 기록의 결손을 기억하는 장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