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신재 최산두라는 선비는 동복 지역으로 유배됐다. 유배지에서의 시간은 대개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최산두는 이곳의 절경을 마주하며 전혀 다른 감흥을 느꼈다. 그는 이 풍경이 중국의 소동파가 뱃놀이를 하며 그 유명한 「적벽부」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적벽에 버금간다고 여겼고, 이곳에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을 따라 약 7km에 걸쳐 발달한 이 절벽은, 지질학적으로 중생대 백악기의 응회암 지층으로 이뤄져 있다. 유배라는 정치적 좌절 속에서 자연을 향해 눈을 돌린 한 선비의 심미안이, 결과적으로 이 절경에 지금까지 통용되는 이름을 붙여준 셈이다. 화순적벽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을 마감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1979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됐다가 2017년 명승 제112호로 승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