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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익선동 · ✊

3·1운동의 시작은 한 건물 안에만 있지 않았다 — 태화관·천도교·탑골공원

1919년 3월 1일을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한 사람이 선언서를 읽은 장면만으로 기억하면 준비와 확산의 구조가 사라진다. 천도교·기독교·불교계 인사들은 독립선언서 작성과 서명, 인쇄와 배포를 조직했다. 학생들은 별도의 연락망을 통해 집결을 준비했다. 인사동과 삼일대로 일대는 종교시설, 인쇄소, 요릿집, 공원이 가까이 있어 선언이 군중행동으로 바뀔 수 있었던 도시 무대였다.

민족대표는 탑골공원이 아니라 태화관에 모였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29명이 인사동의 요릿집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만세를 외쳤다. 대규모 군중과 충돌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학생들이 모인 탑골공원과 장소를 달리했다. 이들은 일본 경찰에 자신들의 행동을 알렸고 현장에서 연행됐다. 현재 옛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며 태화빌딩과 3·1독립선언광장이 장소의 기억을 잇는다.

탑골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의 만세가 거리로 나갔다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시민은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종로 거리로 나갔다. 시위는 남대문·덕수궁·미국영사관 등 여러 방향으로 퍼졌고 전국의 만세운동과 연결됐다. 팔각정 하나가 운동을 만들어냈다기보다, 준비된 문서와 연락망이 열린 공원과 거리에서 대중의 행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3·1운동 뒤 공론장의 역할을 이어갔다

중앙대교당은 1918년 공사를 시작했지만 천도교가 독립운동에 자금을 사용하면서 완공이 늦어져 1921년에 문을 열었다. 이후 종교행사뿐 아니라 정치집회, 강연, 공연이 열렸다. 건축 연도만 외우기보다 독립운동의 조직 기반이 해방 이전 시민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