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Trip NOW
← 이 동네 이야기 전체보기

추모의 제단에서 성문과 이주민 거리까지 ·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장충동·광희동 160분 입문 코스

장충동과 광희동은 남산 동쪽 기슭에서 동대문 상권으로 내려가는 짧은 축 위에 놓여 있다. 숲이 있는 장충단공원, 원형 돔의 장충체육관, 족발집이 모인 골목, 성곽에서 떨어져 서 있는 광희문, 키릴문자 간판이 이어지는 중앙아시아 거리가 3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동선에 들어온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풍경은 국가가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식민지 권력이 공간을 바꾼 방식, 경기와 공연 뒤에 생긴 상권, 국제 도매시장 옆에 자리 잡은 이주민 생활권으로 연결된다.

0~40분: 장충단공원에서 공원의 이름보다 먼저 제단의 역사를 읽는다

동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장충단공원으로 들어가 장충단비를 먼저 찾는다. 장충단은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를 지키다 희생된 이경직·홍계훈과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고종이 1900년에 마련한 제단이다. 비 앞면의 ‘장충단’ 글씨는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이 썼고, 뒷면의 비문은 민영환이 지었다. 오늘 보이는 공원 전체가 원래 제단의 모습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므로, 비석과 안내판을 기준으로 사라진 제향 공간을 상상한다.

40~75분: 수표교에서 청계천이 아닌 남산의 물길을 따라온 다리를 본다

공원 안 수표교는 처음부터 장충동에 있던 다리가 아니다. 청계천 복개 과정에서 1958년 철거되어 옮겨졌고, 현재는 남산에서 내려오는 남소문동천 가까이에 놓여 있다. 다리 아래 물길과 원래 청계천의 폭을 동일시하지 말고,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원래 맥락에서 떼어내는 선택이 무엇을 남기고 잃는지 살핀다.

75~115분: 체육관과 족발골목에서 대중행사가 만든 상권을 읽는다

동호로를 건너 1963년 문을 연 장충체육관의 원형 외관을 본다. 실내 스포츠와 프로레슬링·복싱, 대형 집회와 공연이 집중되던 시절 관중은 경기 뒤 주변 음식점으로 흘렀고, 족발집들이 장충동의 이름과 함께 알려졌다. 영업 중인 식당 입구와 대기 줄을 막지 않고, 특정 한 집을 ‘원조’로 단정하기보다 여러 가게가 경쟁하며 골목의 명성을 만들었다는 점을 본다.

115~160분: 광희문을 지나 중앙아시아 거리를 생활권으로 만난다

장충동 주택가를 따라 북쪽으로 걸으면 성벽이 끊긴 자리 끝에 광희문이 나온다. 문은 원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약 15미터 옮겨 복원되었으므로 주변 도로와 성곽선을 함께 비교한다. 광희문에서 퇴계로를 건너면 러시아어를 비롯한 키릴문자, 몽골어와 한글 간판이 섞인 광희동 골목이 이어진다. 음식점·식료품점·여행사·물류업체는 관광 배경이 아니라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반이다. 사람 얼굴과 상점 내부를 허락 없이 촬영하지 않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걷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