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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 🏛️

고종은 왜 궁궐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갔을까

정동공원 언덕에 남은 흰 탑은 작은 전망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은 1896년 2월부터 약 1년 동안 조선의 국왕이 머물며 국정을 처리한 구 러시아공사관의 흔적이다. 당시 러시아를 뜻하던 한자 ‘아라사’의 첫 글자를 따 이 사건을 아관파천이라고 부른다. ‘파천’은 임금이 난리를 피해 거처를 옮긴다는 뜻이다.

을미사변 뒤의 공포

1895년 일본인 낭인과 조선군 일부가 경복궁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고종 역시 경복궁 안에서 신변을 위협받는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궁녀의 가마를 이용해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들어갔다. 왕이 자기 궁궐보다 외국 공관을 더 안전하다고 여긴 상황 자체가 당시 조선의 위기를 말해준다.

왕이 움직이자 정부도 움직였다

고종은 공사관 안에서 친일 내각을 교체하고 여러 정책을 되돌렸다. 동시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졌고, 여러 외국 세력이 이권을 얻으려 경쟁했다. 아관파천은 단순한 탈출도, 어느 한 나라를 완전히 선택한 사건도 아니다. 일본의 압박을 피하려 러시아를 이용했지만 그만큼 다른 강대국의 간섭에 노출된 외교적 임시방편이었다.

탑 하나만 남은 이유

르네상스풍 벽돌 건물이었던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중 크게 파괴됐고, 현재는 탑 부분과 지하 통로 일부가 남아 있다. 방문자는 탑을 등지고 낮은 정동 시가지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경복궁에서 이곳으로 피신하고, 다시 가까운 경운궁으로 돌아간 고종의 이동을 그려보면 정동의 짧은 거리가 곧 국가 권력의 이동 경로였음을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