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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 🏛️

외국 공사관이 모이자 정동은 외교가가 되었다

정동이 서울의 외교가가 된 것은 전망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뒤 미국 공사관이 1883년 정동에 자리 잡았고, 이어 영국·러시아·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외교시설이 주변에 들어왔다. 궁궐과 관청에 가깝고 도성 서쪽 성문을 통해 제물포 방향으로 이동하기도 편했다. 조용한 주거지는 몇 년 사이 외국어와 마차가 오가는 국제정치의 거리로 바뀌었다.

한옥을 사용한 최초의 미국공사관

미국공사관은 처음부터 거대한 서양식 건물을 세우지 않고 기존 한옥을 구입해 사용했다. 이후 건물을 고치고 늘렸지만 한옥의 기본 형태가 남았다. 오늘날 주한 미국대사관저로 이어지는 이 공간은 정동의 근대화가 오래된 도시를 한 번에 지운 것이 아니라, 기존 집과 길 위에 새 기능을 얹는 방식으로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공사관은 안전지대이자 경쟁의 전초기지였다

외국 공관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조선 정부와 교섭하는 장소였지만, 열강이 철도·광산·차관과 정치적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는 거점이기도 했다. 명성황후 시해 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할 수 있었던 것도 공관이 조선 정부의 통제와 다른 외교적 보호막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정동의 담장은 장식이 아니라 권력이 나뉘는 경계였다.

남은 건물보다 사라진 자리를 읽는다

현재 모든 공사관 건물이 원형대로 남아 있지는 않다. 구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어 탑 일부만 남았고, 다른 공관들도 용도와 모습이 달라졌다. 정동에서는 한 채를 보는 것보다 미국대사관저·영국대사관·정동공원의 위치를 지도에서 이어 보는 편이 중요하다. 좁은 반경 안에 나라별 이해관계가 얼마나 가까이 맞붙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