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반남면에는 해발 100m 안팎의 낮은 봉우리인 자미산을 중심으로 40여 기의 고분이 흩어져 있다. 동쪽 구릉의 덕산리 고분군, 북동쪽의 신촌리 고분군, 서쪽 능선의 대안리 고분군이 그것이다. 이 무덤들의 가장 큰 특징은 매장 방식이다. 고구려의 돌무지무덤이나 백제의 돌방무덤과 달리, 이곳에서는 대형 옹관, 즉 커다란 항아리를 관으로 사용했다. 원래 동아시아에서 옹관은 서민들의 관으로 널리 쓰이던 것이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오히려 최고 권력층의 매장 문화로 고도화됐다는 점이 특이하다.
실제로 이 고분들에서는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무늬가 새겨진 환두대도(고리자루칼) 등 왕이나 그에 준하는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었던 유물들이 다수 출토됐다. 이는 이 지역에 백제에 완전히 편입되기 이전,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던 마한의 한 소국이 존재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다만 이 무덤들의 주인공이 정확히 누구였는지, 그 정치체가 백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는 학계에서도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다. 나주 대안리·신촌리·덕산리 고분군은 각각 사적으로 지정됐다가, 이후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해 하나로 통합되어 "나주 반남 고분군"이라는 이름의 사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