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안에 남은 고대 묘역
서울 방이동 고분군은 송파구 방이동에 남은 삼국시대 무덤군으로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현재의 공원형 경관만 보면 무덤 몇 기가 고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석촌동·가락동 고분군,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함께 보면 한성기 백제 왕도 주변의 넓은 묘역을 이해할 수 있다. 도시 개발 이전에는 더 많은 고분이 분포했으나 주택과 도로가 들어서며 일부만 보존됐다. 여행자는 ‘도시 한복판의 의외의 무덤’이라는 감상에서 멈추지 말고, 왜 왕성 바깥의 이 지형에 장기간 무덤이 이어졌는지 질문할 수 있다.
돌무지무덤과 굴식돌방무덤의 차이
인근 석촌동 고분군은 돌을 층층이 쌓은 대형 돌무지무덤으로 유명하다. 방이동에서는 봉분 안에 돌로 방을 만들고 통로를 낸 굴식돌방무덤이 중심을 이룬다. 겉으로는 모두 둥근 잔디 언덕처럼 보여도 내부 구조와 장례 방식이 다르다. 안내판의 평면도에서 널길과 돌방, 봉분의 관계를 확인하면 무덤을 열지 않고도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보호를 위해 내부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출입문이나 환기구 주변을 억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백제와 신라를 구분해서 말하기
국가유산포털의 기본 분류는 방이동 고분군을 백제시대 유적으로 소개하지만, 개별 무덤의 축조 시기와 주체를 두고 연구가 이어져 왔다. 한성 백제 왕도권과 관련된 묘역이라는 의미가 크면서도, 일부 굴식돌방무덤과 출토 양상은 신라 세력이 한강 유역에 진출한 이후의 흔적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모두 백제 왕족의 무덤’이나 ‘특정 왕의 능’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확인된 묘제와 출토품, 연구자가 제시한 가능성을 구분해 설명하는 것이 정확하다.
무덤에서 사람의 이름보다 구조를 읽다
주인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돌을 운반하고 방을 짜고 봉분을 쌓은 노동, 여러 사람을 매장한 순서, 주변 왕성과 도로의 관계가 당시 사회를 보여 준다. 석촌동의 대형 적석총과 방이동의 석실분을 비교하면 한강 유역의 지배 세력과 장례문화가 시간에 따라 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편의 여행에서는 방이동만 자세히 보고 석촌동은 별도 일정으로 두어도 충분하다. 두 곳을 빠르게 체크하는 것보다 묘제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는 편이 낫다.
조용한 공원을 사적으로 방문하기
고분군은 주민 산책 공간처럼 이용되지만 국가유산이다. 봉분 위로 올라가거나 돌을 옮기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비와 눈 뒤 잔디 사면은 미끄럽고 발굴·정비 때문에 동선이 바뀔 수 있으므로 현장 안내를 따른다. 인근은 주택가여서 단체 해설과 촬영 때 목소리와 통행을 조절한다. 개방시간과 전시 공간 운영은 방문일에 확인한다. 이름 없는 무덤을 억지로 왕에게 연결하지 않고 구조와 시대의 겹침을 읽는 것이 방이동 고분군을 존중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