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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 · 🥟

대림동은 한 글자씩 빌려 만든 이름이다

3화 · 빌린 지명 위에 이주와 음식의 생활 언어가 쌓였다

대림동은 큰 숲을 뜻해서 생긴 이름이 아니다. 신대방동의 ‘대’와 신도림동의 ‘림’을 한 글자씩 가져와 만들었다. 과수원과 공단 노동자의 주거지, 중국 동포의 생활상권이 차례로 겹친 시간을 읽으면 시장 음식도 단순한 이국적 구경거리가 아니게 된다.

과수원과 모래밭이 있던 자리

대림동은 조선시대 경기도 시흥군에 속했고 도림천과 대방천 사이에는 채소밭과 과수원, 개천 주변 모래밭이 있었다. 대림1동 일대의 큰 과수원 때문에 원지막이라 불린 마을 이름은 오늘날 원지공원에 남아 있다. 1936년 영등포 일대가 경성부로 편입될 때에도 이곳은 시흥군 도림리로 남았고, 1949년 서울 영등포구에 편입되며 대림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50년대 후반 공장이 들어오고 구로공단이 성장한 뒤에는 노동자 주거지가 되었다. 오늘의 음식거리만 보면 이 시간이 사라진다. 중국 동포가 자리 잡기 전에도 대림동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온 사람들이 산업지역 가까이에 집을 구한 동네였다.

대림역 앞에서 언어가 바뀐다

대림역은 2호선과 7호선이 만나고 구로·가산디지털단지와 서울 서남권 산업지역으로 이동하기 쉽다. 2000년대 중국 동포가 이 일대에 자리 잡은 배경에도 일자리와 교통, 당시의 주거 여건이 함께 작용했다. 서울시는 2013년 대림2동 일부 주거환경관리사업 대상지에서 주민의 43.4퍼센트가 중국 동포였다고 기록했다. 식료품점과 음식점, 여행사, 통신점과 생활서비스가 생겨난 것은 관광객용 차이나타운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어 간판은 누군가에게 이국적 배경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반찬, 송금, 전화와 일자리를 찾는 생활 정보이다. 영화 속 범죄 공간이라는 이미지로 실제 주민의 삶을 재단하지 않아야 한다.

대림중앙시장은 한 나라의 메뉴판이 아니다

대림역에서 대림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양꼬치뿐 아니라 연변식 면, 우육면, 량피, 빠오즈, 따빙, 구운 냉면과 여러 두부 음식이 보인다. 이를 하나의 ‘중국 음식’으로 묶으면 중국 동북지역과 연변, 한반도 북부의 식문화, 한국 생활에서 달라진 조리법이 겹친 과정을 놓친다. 처음 방문했다면 모든 음식을 먹으려 하기보다 국수 한 그릇과 작은 분식 하나처럼 양을 조절한다. 만두와 전병류도 생각보다 클 수 있다. 고수, 매운 정도, 산초의 얼얼함, 재료와 알레르기 정보를 주문 전에 확인하고, 첫 메뉴가 입에 맞지 않았다고 시장 전체의 맛을 평가하지 않는다.

사람의 이동을 존중하며 걷는다

대림동에서는 읽지 못하는 간판 때문에 평소보다 천천히 걷게 된다. 사진과 번역 앱을 이용하거나 상인에게 물어볼 수 있지만, 시장 상인과 손님을 이국적인 장면처럼 허락 없이 촬영하지 않는다. 시장은 누군가의 일터이자 저녁 장보기 길이다. 특정 점포의 영업시간과 결제 방식은 바뀔 수 있으므로 당일 확인한다. 붐비는 시간에는 좁은 통로와 배송 동선을 막지 않는다. 대림동은 이웃 동네에서 한 글자씩 빌려 이름을 만들었고 이후 공장 노동자, 오래 산 주민, 중국 동포와 새 상인이 서로 다른 생활 언어를 보탰다. 예상하지 않았던 음식 하나를 고르는 일은 그 겹을 관광 상품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로 이해하는 작은 출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