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동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때 함경도 지역 등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집단으로 자리 잡아 형성됐다. ‘아바이’는 함경도 말로 나이 든 남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설명된다. 피란민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 북쪽과 가깝고 비어 있던 모래사장에 임시 집을 지었다. 식수와 토대가 부족한 곳에서 신포·정평·홍원·단천 등 출신지별 공동체가 생활을 조직했고, 분단이 길어지며 임시는 고향을 대신하는 주소가 됐다.
출신지 이름은 사라진 고향을 공간에 옮겼다
같은 고장 사람들이 모여 말과 음식, 친족·이웃 관계를 유지했다. 마을 안 출신지 명칭은 행정구역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월남한 사람들이 기억과 도움망을 만들기 위한 생활 지도였다. 한 사람의 피란 경로를 모든 주민에게 일반화하지 않고 출신 지역, 도착 시기, 가족 구성과 후대 세대를 구분한다.
모래땅의 집은 낭만적 판잣집이 아니었다
배수·식수·바람에 취약한 곳에 자재를 구해 집을 만들고 어업·가공·부두 노동과 장사를 이어갔다. 가난을 사진 배경으로 소비하거나 ‘옛 모습이 사라져 아쉽다’고 말하려면 주거 안전과 위생 개선도 함께 봐야 한다. 현재의 주택과 도로는 실패한 보존이 아니라 주민이 더 안전하게 살기 위해 바꾼 결과일 수 있다.
방송은 마을을 알렸지만 역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드라마 촬영지와 벽화, 음식이 방문객을 늘렸다. 촬영 세트와 실제 피란 주택, 예술사업으로 그린 벽화와 주민 기억을 구분한다. 특정 장면을 재연하려고 집 문을 열거나 골목 통행을 막지 않는다. 속초시립박물관·실향민 관련 전시와 구술을 함께 보면 화면 밖의 이주와 정착이 보인다.
실향을 현재형으로 존중한다
주민을 만나도 가족의 죽음, 북의 친척, 전쟁 경험을 호기심으로 캐묻지 않는다. 공개된 구술은 채록자·연도·동의 범위를 표시하고 한 증언을 전체 함경도 문화로 만들지 않는다. 1세대가 줄어든 뒤 음식과 말, 제례를 잇는 후손의 방식도 ‘원형이 아니다’라고 배제하지 않는다. 마을의 가치는 슬픈 배경이 아니라 귀환하지 못한 사람들이 물·집·일·공동체를 만들며 도시를 확장한 데 있다.
실향민이라는 말도 법적·역사적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1세대, 그 자녀와 손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현재 주민이 모두 같은 경험을 가진 것은 아니다. 축제 참가자 수나 음식점 매출이 기억 전승의 깊이를 직접 증명하지도 않는다. 외국어판에서는 abai를 일반적인 ‘아버지’로 번역하지 않고 함경도 방언의 맥락을 남긴다. 북쪽 지명을 지도에 표시할 때는 현재 행정명과 당시 주민이 사용한 고향 이름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마을의 새 건축과 예술공간도 기억을 지우는 것인지, 생활 안전과 다음 세대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인지 사업별로 확인해야 한다.
기념행사와 실향민문화축제는 기억을 공유하는 현재의 형식이며 피란 당시 행사를 그대로 복원한 것은 아니다. 행사 날짜와 주민의 일상 시간을 구분하고, 추모·제례 중에는 관광객 동선보다 참여자의 의사를 우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