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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민주묘지·수유동 · ⚰️

혁명 3년 만에 지어진 묘지

4·19혁명 희생자들의 묘지는 혁명 직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3년 만에 조성됐고, 30여 년 뒤 대통령의 지시로 국립묘지가 됐다.

핵심 요약

1961년 2월 국무회의가 공원묘지 설립을 의결했고, 1962년 12월 기공식을 거쳐 1963년 9월 20일 준공됐다. 사실 이때 면적은 9,917㎡였다. 사실 1993년 4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성역화 사업이 시작돼 총 150억 원이 투입됐고, 면적이 42,975㎡에서 135,537㎡로 대폭 확장됐다. 사실 1995년 4월 준공과 동시에 국립묘지로 승격됐고, 2006년 ‘국립4·19묘지’에서 ‘국립4·19민주묘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사실

현장에서 볼 것

정확한 표현

“처음부터 국립묘지였다”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1963년 준공, 1995년 국립묘지 승격이라는 순서를 지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