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일, 청산도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선정됐다. 슬로시티는 단순히 느린 관광을 홍보하는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 지역 고유의 자연환경과 전통문화를 보전하며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국제 인증 제도다. 청산도가 이 인증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랜 세월 섬 주민들이 손으로 쌓아온 구불구불한 돌담길과 계단식 다랑논이 있었다.
〈서편제〉 개봉과 슬로시티 선정은 14년의 간격을 둔 청산도의 두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영화의 흥행이 국제 인증을 직접 이끌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슬로시티는 지역의 자연환경·문화·공동체와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제도이므로, 촬영지로서의 인지도와 주민의 생활유산을 보전하려는 인증의 의미를 서로 다른 층위로 설명하는 편이 정확하다.
청산도의 느린 길은 인증 뒤 새로 발명된 풍경만을 뜻하지 않는다. 돌담길, 다랑논, 구들장논, 마을 사이 옛길처럼 주민이 생활과 농사를 위해 만든 공간을 걷기 코스로 연결한 것이다. 관광객에게는 속도를 늦추는 체험이지만 주민에게는 지금도 집과 밭을 오가는 생활도로일 수 있다. ‘느림’을 사진 배경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농작업 차량과 주민 통행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은 2007년 당시 청산도가 신안 증도, 담양 창평, 장흥 유치·장평과 함께 한국의 첫 슬로시티 인증 지역이 된 맥락 속에서 읽는다. 지역별 행정 단위와 인증 범위를 정확히 비교하지 않은 채 청산도만 유일한 최초였다고 확대하지 않는다. 인증 상태와 회원 정보는 갱신될 수 있으므로 현재의 지위를 말할 때는 국제슬로시티연맹 또는 한국슬로시티본부의 최신 목록을 다시 확인한다.
이 편의 좌표는 ‘청산도 전체’를 한 점으로 표시하지 않고, 여행자가 실제로 시작할 수 있는 청산도 슬로길 1코스 미항길 지점에 둔다. 다만 슬로시티는 특정 조형물 하나가 아니라 섬의 환경과 공동체를 포괄하는 인증이므로 좌표는 대표 진입점이라는 한계가 있다. 7편의 서편제 촬영지와 가깝지만, 이 편은 영화가 아니라 인증의 평가 대상과 주민 생활유산을 질문한다.
청산도 방문은 배편을 전제로 한다. 기상 악화로 입도나 출도가 지연될 수 있으므로 당일 마지막 배에 맞춘 촉박한 계획은 피한다. 코스 거리·화장실·식수·공사구간도 공식 슬로길 안내에서 확인한다. ‘천천히 걷기’는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섬의 교통 조건과 생활공간을 존중하는 실제 여행 태도여야 한다.
슬로길 여러 코스는 난이도와 거리, 마을 통과 구간이 다르다. ‘슬로’라는 이름이 모든 구간이 평탄하거나 짧다는 뜻은 아니다. 체력과 귀항 시간을 고려해 한두 구간을 선택하고, 농로와 돌담길에서는 지정 노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증의 철학을 이해하는 일과 안전한 보행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