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영암 땅은 백제 시대에 월나군(月奈郡)이라 불렸다. 통일신라의 경덕왕은 757년(경덕왕 16), 전국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정비하는 대규모 사업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월나군은 영암군(靈岩郡)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을 담은 이 이름은 이후 오랫동안 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 이름은 고려시대에 들어 한 차례 더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995년(고려 성종 14), 이 지역은 낭주(朗州)로 승격되며 안남도호부라는 지방 행정·군사 기구가 설치됐다. 도호부는 일반 군현보다 한 단계 높은 지위를 지닌 행정단위였다는 점에서, 이 시기 낭주의 위상이 상당히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018년(현종 9), 안남도호부는 전주로 옮겨갔고, 관청을 잃은 이 지역은 다시 영암군이라는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관청의 위치에 따라 한 지역의 이름과 지위가 오르내렸던 이 사례는, 지명이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권력의 흔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