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암의 창건 설화는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훗날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승려 중 한 명이 되는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원통암"이라는 이름의 암자를 세웠다고 전한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한국 불교에서는 특히 바다를 마주한 절벽이나 섬에 관음 기도처가 많이 자리하는데, 향일암도 그런 전통 위에 있다.
평온했던 이 암자의 역사는 임진왜란(1592~1598년)을 거치며 크게 흔들렸다. 승병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으면서 절은 격전지가 됐고, 그 과정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절이 다시 세워진 것은 100년도 더 지난 1715년, 인묵대사에 의해서였다. 이때 절의 이름도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으로 바뀌었다. 이 이름에는 대일여래(大日如來)로 여겨지는 비로자나불께 귀의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오늘날 향일암은 금오산의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남해에서 손꼽히는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매년 새해 첫날이면 해돋이를 보러 온 인파가 좁은 산길을 가득 메운다 — 전쟁 통에 불탔던 기도처가, 지금은 한 해의 첫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자리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