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의 현재 위치는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이 아니다. 1562년 중종의 능인 정릉을 선릉 동쪽 기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봉은사 터가 왕릉 영역에 들어갔고, 절은 수도산의 지금 자리로 이전했다. 왕릉을 위한 국가 사업이 주변 종교 공간의 지도를 바꾼 사례다.
왜 왕릉 곁에 사찰이 있었을까
조선 왕릉 가까이에는 죽은 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고 능을 관리하는 능침사찰이 놓이곤 했다. 봉은사 역시 선릉과 정릉의 원찰 역할을 맡았다. 유교 국가 조선이 불교를 억제했다는 큰 설명만으로는 왕실이 실제 의례에서 사찰을 활용한 이 장면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이전은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았다
옛 봉은사 터와 승려 시험이 열렸다고 전하는 승과평은 오늘날 선정릉과 코엑스 일대의 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현재 경내만 보면 산자락에 고립된 절처럼 느껴지지만, 과거의 활동 범위는 지금보다 넓었다. 봉은사와 코엑스를 함께 걷는 이유도 바로 이 사라진 공간 관계를 되짚기 위해서다.
두 지점을 지도에서 함께 보기
경내 전각만 보고 나오지 말고 선릉·정릉, 봉은사, 코엑스가 이루는 삼각형을 확인해 보자. 한 절의 이전은 왕릉 조성, 국가의 토지 사용, 강남 개발이 같은 땅 위에 차례로 겹친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