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북촌동’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북촌이 공식 행정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가회동·계동·재동·안국동·원서동·삼청동 일대를 넓게 가리킨다. 청계천과 종로의 북쪽 마을이라는 뜻에서 불린 이름이며, 시대와 목적에 따라 경계가 달라졌다.
궁궐 사이의 지리가 권력가를 불러들였다
북촌은 왕실과 주요 관청에 접근하기 좋고 북악산 남사면의 볕과 배수 조건도 유리했다. 조선시대 권문세가와 관료의 집이 많이 들어선 배경이다. 1906년 호적 자료에서도 양반과 관료 호주 비율이 높게 나타나지만, 이 수치로 모든 주민을 양반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동네 이름에는 오래된 기관과 지형이 남아 있다
재동, 계동, 소격동 같은 이름은 옛 기관이나 장소의 기억을 품는다. 길도 북쪽 골짜기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지형을 따라 형성됐다. 오늘의 카페 거리나 ‘북촌 8경’보다 훨씬 오래된 도시 구조가 지명과 경사에 남아 있다.
관광 브랜드가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오늘날 북촌은 흔히 가회동 한옥 골목 몇 곳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그러나 원서동의 공방, 계동의 생활상권, 재동의 학교와 병원 터도 북촌의 일부다. 한 장의 기와지붕 사진보다 여러 동네가 연결된 생활권으로 보아야 북촌을 과도하게 단순화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