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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 📍

1530년대(조선 중종). 스승의 죽음에 절망해 관직을 등진 제자가, 고향에 은거하며 조선 중기 최고의 정원을 남겼다

양산보(1503~1557)는 조광조(1482~1519)를 스승으로 섬긴 사림파 학자였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사사된 뒤 양산보는 고향 담양으로 돌아와 은거했고, 소쇄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관련 해설은 이 선택을 스승의 죽음과 정치적 좌절을 겪은 뒤의 은거로 설명한다. 다만 양산보 개인의 내면을 단정하기보다, 확인되는 행적과 그 배경을 함께 읽는 편이 정확하다.

이렇게 지어진 정원에는 처음에는 이름이 없었다. 훗날 면앙정 송순(1493~1583)이 이 정원을 보고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瀟灑)"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계곡을 중심으로 사다리꼴 형태를 이룬 이 정원은 애양단·오곡문·제월당·광풍각 네 구역으로 나뉘며,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3년 사적 제304호로 지정됐다가, 2008년에는 명승 제40호로 재지정됐다. 정치적 좌절에서 시작된 이 정원이, 지금은 한국 정원 문화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