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Trip NOW
← 이 동네 이야기 전체보기

소록도자혜의원 설립과 한센인 강제격리 · 📍

1916년(조선총독부령 제7호).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을 가둔 섬에서, 인권침해의 역사가 시작됐다

1916년 2월 24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가 공포되며 소록도에 '도립 소록도 자혜의원'이 설치됐다. 당시 조선총독부 위생고문이던 야마네 마사츠구는 "조선의 나환자도 격리 수용시켜야 한다"고 건의했고,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소록도가 한센병 요양소 부지로 선택됐다. 이후 전국 각지의 한센병 환자들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 섬으로 끌려와 수용됐다.

수용된 사람들은 치료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강제노역에 동원됐고, 남성은 정관절제 수술을, 여성은 임신중절 수술을 강요받았다. 대법원은 훗날 이러한 수술이 적법한 근거와 자유롭고 진정한 동의 없이 시행됐다면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질병 관리와 수용이라는 명분 아래 생식에 관한 자기결정권까지 침해한 국가 폭력이었다.

공식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총독부는 섬이라는 자연 격리 조건, 온화한 기후, 물과 물자 운송 편의를 이유로 소록도를 골랐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민의 저항에도 섬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집과 땅을 강제로 매수하고 이주시켰다. 1916년 2월 24일은 관제가 공포된 날이며 실제 병원 건물은 1917년 2월 준공됐다. 설립과 시설 완공, 환자 수용 확대를 한 날짜로 합치지 않는다.

당시 ‘자혜’라는 명칭이 시설의 실제 운영을 보장하지 않았다. 소록도자혜의원은 일반 자혜의원과 달리 한센병 전문 특수병원이었고, 이후 절대격리 정책과 시설 확장 속에서 생활 통제와 강제노동이 강화됐다. 한센병은 치료 가능한 감염병이며 일상 접촉으로 쉽게 전파되지 않는다. 과거 정책을 설명할 때 오늘의 주민과 환자를 위험한 존재처럼 재현하지 않는다.

강제 정관절제와 임신중절은 1916년 설립 당일부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시행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시기·병원·피해자별 사실은 재판 기록과 피해조사 자료로 확인해야 한다. 이 편은 격리 제도의 출발과 이후 누적된 침해를 연결하되, 서로 다른 시대의 행위를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지 않는다. 당사자는 행정의 객체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들고 기록을 남기며 권리를 요구한 주체였다.

소록도는 지금도 국립병원이자 주민의 생활 공간이다. 박물관과 역사탐방은 운영 일정과 사전 신청 범위가 바뀔 수 있으며, 병사지대·관사지대·의료구역의 출입 규칙을 따라야 한다. 환자나 주민을 동의 없이 촬영하지 않고, 유적을 공포 체험의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표 좌표는 섬 중심이 아니라 한센병박물관의 공식 방문 지점으로 잡는다.

공식 연혁에는 기관 명칭과 관리 주체가 여러 차례 바뀐 과정이 남아 있다. 자혜의원, 소록도갱생원, 국립병원이라는 이름을 한 시대의 동일 제도로 취급하지 않는다. 격리 정책의 법적 근거와 실제 운영도 시기별로 달랐다. ‘병원이 세워져 인권침해가 시작됐다’는 제목은 제도 출발을 압축한 표현이며, 개별 침해의 발생 연도와 책임 주체는 각 기록에서 다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