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희궁은 숭정전과 자정전, 태령전 등 몇 전각이 넓은 공원 안에 놓여 있어 작은 별궁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수백 동의 건물이 경사진 지형에 펼쳐진 큰 궁궐이었다. 경복궁을 북궐, 창덕궁·창경궁을 동궐이라 한 데 대응해 경희궁은 서궐로 불렸다.
여러 왕이 머문 실제 생활궁궐이었다
광해군 때 경덕궁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됐고 인조 이후 여러 왕이 머물거나 정사를 보았다. 다른 궁궐의 화재와 수리, 정치 상황에 따라 왕이 옮겨 머무는 피우처 역할도 했다. ‘이름만 궁궐인 별장’이 아니라 왕실 생활과 행정이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경성중학교가 궁터를 차지했다
궁궐 기능이 약화된 뒤 건물이 다른 궁으로 옮겨지거나 매각됐고, 식민지기에는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며 지형과 건물 배치가 크게 바뀌었다. 해방 뒤 서울고등학교가 이어 사용하다 이전했고, 이후 복원과 공원화가 진행됐다.
현재 전각은 원위치·원재료가 서로 다르다
흥화문은 도로와 건물 변화로 옮겨졌다가 현재 위치에 복원됐고, 숭정전 권역도 발굴과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됐다. 일부 원래 건물은 다른 장소에 남아 있다. 경희궁을 볼 때 ‘현존 원형’, ‘이건’, ‘복원’을 구분해야 궁궐 해체의 규모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