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건물을 걷다 보면 이상한 점을 눈치채게 된다. 이 정도 규모의 국제문화시설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웅장한 파사드가 없다. 실제로 ACC 시설의 대부분은 지하에 있고, 지상은 옛 전남도청 건물과 넓은 잔디 광장, '민주광장'이 차지하고 있다. 이 설계는 우연이 아니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마지막 진압 작전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 자리, 옛 전남도청이었다. 시민군이 최후까지 지키다 스러진 곳 위에 새 건물을 높이 세우지 않고 땅속으로 시설을 내려보낸 것은 "이 땅 위에서 다시는 총성이 울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무언의 선언에 가깝다.
옛 도청 정문에는 그날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계엄군이 발사한 총탄이 스친 자국이 현판 주변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데, 이 현판의 역사적 가치 때문에 정작 최근 복원 과정에서는 원본을 떼어 별도 보존하고 그 자리에는 복제품을 걸었다. 원형을 지키기 위해 원본을 감추는, 얼핏 모순돼 보이는 선택이다. 이 건물은 2009년에도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 당시 도청 별관 전체를 철거하려는 계획에 5·18 단체와 시민사회가 반발해 보존운동을 벌였고, 결국 별관 일부만 헐리는 선에서 지금의 모습이 남았다. 이후 2019년 원형 복원이 결정돼 공사가 이어졌고, 최근 복원을 마쳤다. 다만 복원이 끝났다고 논쟁도 끝난 것은 아니다. 이 공간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야 항쟁의 상징성을 지킬 수 있는지를 두고 5·18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아시아 각국의 전시와 공연이 열리는 창·제작센터가 나온다. 항쟁의 기억과 아시아 동시대 예술이 같은 건물, 다른 층에서 공존하는 셈이다. 참고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공문서·재판기록·성명서·사진·필름 등 5·18 관련 기록물은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문서만 4,271권, 필름 2,017컷, 사진 1,733점, 전체 페이지로는 85만 8,900여 쪽에 이르는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