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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과 우수영 · 📍

1597년(선조 30). 일제가 경복궁으로 떼어 갔던 승전비가, 광복 후 다시 바다 앞 제자리로 돌아왔다

1597년 9월 15일, 이순신은 얼마 남지 않은 조선 수군의 배로 울돌목(명량)을 등지고 싸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진영을 울돌목 너머 해남의 전라 우수영으로 옮겼고, 다음 날인 9월 16일 이곳에서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찔렀다. 명량이라는 이름 자체가 "우는 물목"이라는 뜻으로, 물살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에서 비롯됐다. 좁은 해협의 지형과 거센 물살을 전술적으로 활용한 이 승리는, 정유재란 국면을 뒤집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이 승전을 기리기 위해 1688년(숙종 14) 전남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명량대첩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이 비석은 원래 자리에서 뜯겨 나가 경복궁 근정전 회랑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겪었다. 승전의 기억을 지우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광복 후 1947년 우수영의 유지들이 이 비석을 되찾았으나, 처음에는 문내면 학동리 청룡산에 다시 세웠고, 2011년에야 조선시대에 처음 세워졌던 문내면 동외리 원래 자리로 옮겨졌다. 보물 제503호로 지정된 이 비석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빼앗겼다 되찾은 승전의 기억을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