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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표충사와 서산대사 · ⛰️

1604년(서산대사 입적)~1789년. 나라를 구한 승병장이 남긴 유언 한 줄이, 200년 가까이 지나서야 나라의 공식 사당으로 완성됐다

서산대사(청허 휴정, 1520~1604)는 조선시대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이자,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인물로 꼽힌다. 72~73세의 나이에 팔도십육종도총섭을 맡은 그는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병 5,000여 명(직속 1,500여 명)의 결집을 총괄했고, 명군과 합세해 평양성을 되찾았다. 다만 평양성 탈환의 일선 지휘는 그의 제자 유정(사명대사)이 맡았다. 입적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가사와 발우, 즉 의발을 대흥사에 전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왜 하필 해남의 이 절이었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전란의 참화가 상대적으로 덜 미친 남쪽 사찰이라는 점이 고려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언이 공식적인 사당으로 결실을 맺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788년, 대흥사의 승려들은 조정에 상언단자를 올려 서산대사의 충의를 기리는 사당에 나라의 사액을 내려 달라고 호소했다. 정조는 이를 받아들였고, 이듬해인 1789년 4월 예관을 보내 제향하도록 함으로써 표충사가 공식적으로 인가됐다. 한 승병장이 죽으며 남긴 유언 한 줄이, 185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나라가 인정하는 사당으로 완성된 것이다. 지금 대흥사 일원은 사적 제508호, 두륜산 대흥사 일원은 명승 제66호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