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명성황후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뒤, 이 자리에 능이 조성돼 ‘홍릉(洪陵)’으로 불렸다. 사실 명성황후는 이곳에 22년간 잠들어 있다가, 이후 고종과 합장을 위해 경기 남양주의 현재 홍유릉으로 이장됐다. 사실 홍릉숲이라는 이름은 이 능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사실
현장에서 볼 것
- 홍릉숲 안에 표시된 옛 홍릉 터
- 고종이 능을 찾을 때 쉬어가던 우물 ‘어정(御井)’
- 두 왕비의 무덤이 한 지역 안에 시차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
정확한 표현
“홍릉숲에 명성황후 능이 있다”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이장 전 터와 유적만 남아 있다는 점을 구분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