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을 한 줄의 오래된 벽으로 보면 가장 흥미로운 단서가 사라진다. 도성은 태조 때 처음 완성됐지만 무너질 때마다 다시 쌓았고, 세종과 숙종 시기를 비롯한 여러 시대에 공법과 돌의 모양이 달라졌다. 일제강점기의 도시 확장과 전쟁, 주택 건설로 훼손된 뒤 현대에도 발굴·복원·정비가 이어졌다. 지금 보이는 성벽은 원재료와 후대 보수석이 함께 만든 기록이다.
돌의 크기와 맞춤 방식이 공사의 시대를 보여준다
초기 성벽에는 비교적 작고 자연스러운 돌을 다듬어 빈틈을 메운 구간이 있고, 후대로 갈수록 더 크고 규격화된 석재를 정교하게 맞춘 구간이 나타난다. 다만 현장에서 돌 하나의 모양만 보고 정확한 연대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안내판과 조사자료가 구분한 구간을 기준으로 비교하고, 수리 과정에서 돌이 이동했을 가능성도 생각한다.
각자성석은 옛 공사의 책임표다
성돌 일부에는 축성을 맡은 지역이나 책임자, 날짜 등을 새긴 글자가 남아 있다. 태조·세종 때에는 담당 군현 이름이, 조선 중기 이후에는 감독관과 기술자 정보가 새겨진 사례가 확인된다. 거대한 국가 공사가 전국에서 동원된 사람과 물자를 통해 진행됐으며, 구간별 책임을 기록하고 확인했음을 보여준다.
복원된 성벽도 가짜가 아니라 보존 선택의 결과다
원래 돌과 위치가 모두 확인된 구간, 남은 기초 위에 새 돌을 보충한 구간, 성벽의 선만 현대 재료로 나타낸 구간은 서로 의미가 다르다. 새 돌이 보인다고 무조건 잘못된 복원이라 할 수 없고, 말끔하다고 조선시대 원형이라고 할 수도 없다. 현장에서는 돌을 만지거나 성벽에 올라 사진을 찍기보다 재료의 색과 이음새, 안내판의 복원 범위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