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마지막 수도라고 하면 대개 부여(사비)를 떠올린다. 하지만 왕궁리 유적은 그 통념에 균열을 낸다. 30년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궁궐을 둘러싼 담장과 정전(正殿), 정원, 후원, 심지어 화장실과 공방 자리까지 확인됐다. 이는 백제 말기 무왕이 사비와 별도로, 혹은 사비와 함께 익산을 실질적인 통치 거점으로 운영했다는 '익산 천도설' 내지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핵심 물증이다.
부지 안에는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 남아 절터로서의 흔적도 함께 전한다 — 왕궁이 있던 자리에 훗날 절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이 유적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됐는데, 이는 공주 2곳, 부여 4곳, 익산 2곳(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을 아우르는 지정이다. 다시 말해 유네스코도 백제의 이야기를 부여 하나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셈이다. 지금 이 너른 터에 서면 화려한 복원 건축물은 없지만, 발굴로 드러난 담장 라인과 초석들이 백제가 마지막 순간까지 품었던 또 하나의 수도 구상을 조용히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