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는 동양 최대 규모로 꼽히는 백제 사찰터다. 창건설화는 이렇다 — 백제 무왕과 왕비가 사자사로 가던 길에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이를 모시기 위해 절을 세웠다. 그리고 이 왕비는 오래도록 신라의 선화공주로 알려져 왔다. 서동요라는 향가가 이 이야기를 뒷받침한다 — 소년 시절 무왕(당시 이름은 서동)이 신라 왕경에 몰래 들어가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을 만난다"는 노래를 아이들에게 퍼뜨려, 결국 그 소문 때문에 궁에서 쫓겨난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절 자신이 오래된 전설을 뒤집는 증거를 품고 있었다. 국보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안전진단에서 내부가 콘크리트로 채워져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이 드러나 2001년부터 전면 해체·보수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9년 1월, 해체 작업 중 탑 안에서 금동사리봉영기가 발견됐는데, 여기에 새겨진 기록은 뜻밖이었다 — 탑을 세울 당시 무왕의 왕비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 가문 출신의 사택왕후였다. 천 년 넘게 구전돼 온 신라 공주와의 로맨스가, 정작 그 사랑의 증거로 여겨졌던 절의 유물에 의해 흔들린 셈이다. 석탑은 이후로도 복원 작업을 이어가 2019년 4월, 해체 결정으로부터 20년 만에 다시 세워졌다. 지금 미륵사지에 서서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전설과 고고학적 사실 사이의 긴장이 폐허 위에 고스란히 얹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