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은 항구만 여는 일이 아니었다. 항구 옆의 땅을 나누는 일이기도 했다.
1883년, 그리고 이듬해
1883년 인천일본조계조약으로 외국인 거류지의 일부가 일본 전용 조계로 정해졌다 사실. 이듬해에는 청국조계와, 여러 나라가 함께 쓰는 각국공동조계가 이어졌다 사실. 결과적으로 좁은 언덕 하나가 여러 나라의 관할로 쪼개졌다. 조계란 개항장 안에서 외국인이 거주하며 행정·경찰권을 행사하던 구역이니, 사실상 도시 안의 도시였다 추정.
이음매를 걷는다
그 이음매가 청일조계지 경계계단이다. 계단 동쪽이 일본조계, 서쪽이 청국조계였고, 계단을 따라 오르면 각국공동조계 안에 있던 만국공원 — 지금의 자유공원 — 으로 이어진다 사실. 실제로 걸어보면 계단 좌우의 결이 다르다. 한쪽은 중화풍 장식과 붉은 색조가, 다른 쪽은 다른 문법이 남는다 추정. 이 층을 눈으로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계단 중턱에 서서 좌우를 번갈아 보는 것이다.
제도는 사라지고 골격은 남고
조계는 1914년 각국 거류지가 철폐되면서 제도로서 사라졌다 사실. 그러나 그때 그어진 길과 필지의 골격은 남았다. 오늘 이 동네를 걸을 때 왜 길이 이렇게 꺾이는지, 왜 언덕 위아래로 성격이 갈리는지는 대부분 그 시절의 선에서 온다 추정.
기억해둘 관점
다만 이 층을 낭만으로만 읽지 않는 편이 좋다. 조계는 교류의 장이면서 동시에 불평등한 조약의 산물이었다 추정. 계단은 그 두 가지를 함께 남긴 자리이고, 9화에서 다룰 오늘의 질문도 결국 이 도시를 누가 어떻게 다시 그리는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