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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개항장 · 🥢

산둥에서 온 사람들이 만든 음식

1908년, 스물두 살 산둥 청년이 객잔을 열었다. 1911년 이름을 공화춘으로 바꿨고, 그곳에서 짜장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민의 음식이 국민 음식이 된 자리.

한국에서 가장 널리 먹는 외식 메뉴 하나가 이 언덕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온 이주민이었다.

바다를 건너온 정착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중국인들이 오늘날 차이나타운 일대인 선린동 응봉산 기슭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사실. 조선과 청 사이 무역이 성행하면서 중국 요릿집이 생겨났고 사실, 부두 노동과 무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끼니가 이 골목의 수요가 됐다 추정. 2화에서 본 청국조계가 바로 이 층의 제도적 배경이다.

1908년의 객잔

공화춘은 처음부터 식당이 아니었다. 1908년 설립 당시에는 산동회관이라는 이름의 중국식 여관, 곧 객잔이었고, 산둥성 출신의 만 스물두 살 청년 우희광과 공동 투자자들의 출자로 세워졌다 사실.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을 기념해 공화국의 봄을 뜻하는 공화춘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실. 가게 이름 하나에 이주민의 고향에서 벌어진 혁명이 새겨진 셈이다.

이름이 붙은 순간

공화춘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짜장면이라는 상표를 달고 짜장면을 판매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중국 음식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달콤한 캐러멜을 더하고 물기를 적당히 유지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사실, 원래의 것과도 다르고 아무 데도 없던 음식이 됐다 추정. 이민 음식의 전형적인 경로다.

지금 무엇을 보는가

옛 공화춘 건물은 현재 짜장면박물관으로 쓰인다 사실. 차이나타운의 붉은 간판들은 오늘의 관광 풍경이지만, 그 밑에 깔린 것은 개항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의 백 년이 넘는 정착사다 추정. 짜장면 한 그릇이 이 동네에서 갖는 무게가 그래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