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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문과 시구문의 기억 · 📍

광희문은 죽음만 통과한 문이 아니라 도성 동남쪽의 일상문이었다

광희문은 흥인지문처럼 거대한 정문은 아니지만 도성 안팎을 연결한 네 소문 가운데 하나였다. 태조 때 도성과 함께 세워졌고, 남산 동쪽과 청계천 남쪽의 길을 잇는 위치 때문에 수구문이라고도 불렸다. 오늘 문 주변의 성벽은 대부분 끊겨 있어 독립된 기념물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남산에서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의 일부였다.

시구문이라는 별명은 도성의 죽음과 지리를 연결한다

도성 안에서는 매장이 제한됐고, 동쪽과 남쪽 교외의 묘지로 가는 장례 행렬이 광희문을 자주 이용했다.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널리 쓰였다. 그러나 문을 죽음과 괴담으로만 소비하면 장례를 치른 가족과 운구 노동, 도성의 위생·매장 규칙이라는 사회사가 사라진다.

지금의 문은 여러 시대의 파괴와 이동을 품는다

광희문은 1711년에 고쳐 쌓았고 문루는 1719년에 완성됐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성벽과 문루가 크게 훼손됐으며, 도로와 도시 구조 때문에 1970년대 복원 때 원래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15미터 옮겨졌다. 새로 보충한 성벽과 문루를 조선 초기 원형으로 단정하지 않고, 원래 문터와 현재 도로의 관계를 함께 본다.

성문 주변은 관광지이면서 주거지다

광희문에서 장충체육관 쪽으로 이어지는 성곽 자취는 주택가 사이로 지나간다. 늦은 밤 큰 목소리로 해설하거나 창문과 대문을 촬영하지 않는다. 교통섬과 횡단보도가 복잡하므로 사진을 위해 차도에 서지 말고, 문을 통과할 때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쓰는 동선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