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서쪽 골목에는 한글 옆에 러시아어 키릴문자와 몽골어 표기가 이어진다. 관광 안내에서는 ‘작은 러시아’나 ‘실크로드’라 부르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축소판은 아니다. 옛 소련권에서 널리 쓰인 러시아어가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을 잇는 공용어 역할을 했고, 몽골·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 다양한 이주 경로가 겹쳤다.
국제 도매시장이 국경을 넘는 상인의 거점을 만들었다
1990년 한러 수교 전후로 러시아와 옛 소련권의 보따리상들이 동대문 의류와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숙박·통역·환전·운송과 고향 음식을 해결할 장소가 가까운 광희동에 모였다. 이후 러시아인 상인의 구성은 달라졌지만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물류와 생활 서비스가 남아 거리의 성격을 이어갔다.
음식점은 체험장이기 전에 고향의 식탁이다
화덕 빵과 양고기, 만두와 수프, 샐러드와 차를 파는 식당은 여행자에게 새로운 맛을 주지만 이주민에게는 익숙한 언어로 주문하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다. 메뉴를 모르면 정중히 묻고, 돼지고기·소고기·양고기와 할랄 여부를 가게별로 확인한다. 중앙아시아 전체가 같은 음식과 종교를 공유한다고 일반화하지 않는다.
거리의 얼굴을 허락 없이 수집하지 않는다
낯선 문자와 진열품이 사진 소재처럼 보여도 상점은 일터이고 손님은 사생활을 가진 사람이다. 얼굴과 여권·송금서류, 환전 창구, 상점 내부를 허락 없이 촬영하지 않는다. ‘한국 속 외국’이라는 표현보다 이곳 역시 서울 사람들이 만든 서울의 일부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