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역사박물관의 붉은 벽돌 건물은 1916년에 준공된 동관이다. 학교 자체의 시작은 그보다 앞선 1885년이다.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정동의 작은 집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이듬해 고종이 ‘유용한 인재를 기르는 집’이라는 뜻의 배재학당 이름을 내렸다. 서양인이 세웠지만 왕이 이름을 준 학교라는 점에서 당시 개화정책의 복합성이 드러난다.
영어를 배우되 세계를 읽는 법도 배웠다
초기 학생들은 영어뿐 아니라 지리·과학·수학 등 새로운 교과를 접했다. 전통 교육이 경전을 읽고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면, 배재학당은 외국과 교섭하고 근대 행정을 운영할 실무 인재를 길러내려 했다. 교실의 책상 배치와 시간표, 학년 구분 자체도 학생들에게 새로운 생활 규칙이었다.
협성회와 토론의 등장
서재필은 학생들에게 토론과 연설을 가르쳤고, 1896년 학생들은 협성회를 조직했다. 공개 토론과 회보 발간을 통해 정치와 사회 문제를 말하는 연습을 했다. 배재학당 출신 이승만도 협성회 활동에 참여했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장소를 넘어, 시민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만드는 방식이 시험된 공간이었다.
박물관에서 건물의 시간을 본다
현재 동관 내부에는 교과서·사진·교실 자료와 학교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가 있다. 건물 외관만 보고 정동제일교회로 바로 이동하지 말고 창문, 계단, 교실 크기를 살펴보자. 한 세기 전 학생들이 ‘근대’를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수업 종, 교과서, 토론 순서 같은 일상의 규칙으로 익혔다는 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