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동의 이화여고 일대에는 오래된 교정의 흔적과 근대 건물이 남아 있다. 이화학당은 1886년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이 세웠다. 처음에는 딸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일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학생을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한 명에서 시작한 학교는 숙식과 기초교육을 제공하며 조금씩 학생을 늘렸다.
‘이화’라는 이름을 왕실이 내렸다
1887년 고종은 배꽃을 뜻하는 ‘이화’라는 이름을 학교에 내렸다. 외국인 여성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가 왕실의 이름을 받은 것은 여성교육이 완전히 사적인 실험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만 당시 교육에는 선교 목적과 서양의 생활규범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근대 여성교육의 시작을 일방적인 선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교실에서 병원과 사회로
학생들은 한글·영어·산술과 성경, 음악, 생활기술 등을 배웠다. 이화학당과 정동의 여성병원 보구여관은 교육과 의료를 연결했고, 여성 환자를 여성 의료인이 돌볼 필요를 드러냈다. 이후 졸업생들은 교사·간호사·의료인과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여성이 가정 밖에서 전문성을 갖는 길을 넓혔다.
심슨기념관에서 남은 교정을 읽는다
1915년에 세워진 심슨기념관은 현재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전시를 볼 때 유명 졸업생만 찾기보다 초기 학생들의 교과서와 생활규칙, 기숙사 문화를 살피는 편이 좋다. 정동의 여성교육은 추상적인 ‘개화’가 아니라, 누가 글을 배울 수 있고 어디에서 일할 수 있는지를 바꾸는 구체적인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