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는 높은 빌딩 사이에서도 붉은 벽돌과 뾰족한 창문으로 눈에 들어온다.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정동에서 예배를 시작했고, 신자가 늘자 1895년 건축을 시작해 1897년 예배당을 완공했다. 고딕 계열의 형태를 간결하게 적용한 건물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내부의 긴 의자와 설교 중심의 예배 방식도 낯선 풍경이었다.
학교와 교회가 한 인물을 공유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세운 교육자이면서 교회를 이끈 목회자였다. 초기 선교사들은 교육·의료·출판을 별개 사업으로 나누기보다 서로 연결했다. 학생은 학교에서 영어와 과학을 배우고 교회에서 찬송과 연설을 접했으며, 인쇄물은 새로운 지식과 종교 언어를 거리로 옮겼다.
유관순이 다닌 교회
이화학당 학생이던 유관순은 정동제일교회에 다녔다. 1919년 3·1운동 뒤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가 체포됐다. 교회 하나가 독립운동을 직접 지휘했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학교와 교회에서 만난 사람과 사상이 청년들의 사회 참여를 키운 네트워크였다는 점은 중요하다.
문이 닫혀 있어도 볼 수 있는 것
예배나 행사 때문에 내부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그럴 때는 외벽의 벽돌 쌓기, 창의 뾰족한 아치,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사이의 위치를 살펴보자. 세 기관을 지도에서 삼각형으로 연결하면 정동의 근대화가 건물 한 채가 아니라 교육과 종교, 여성과 남성 학생의 이동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