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 학자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부임했다. 그가 베푼 선정이 어찌나 깊었던지, 백성들은 그가 아직 살아있을 때부터 그를 기리는 사당을 세웠다. 이런 사당을 생사당(生祠堂)이라 부른다. 이 사당이 훗날 태산사가 되었고, 조선 성종 14년(1483)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살아있는 사람을 사당에 모신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추모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감사였다. 최치원이 남긴 것은 기록에 남은 업적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직접 갚고자 했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무성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졌다.